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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문현답
루카.20.27-40   2007-11-24 08:01:27, 조회:1,539, 추천:108
   
      자신의 협소한 사고와 경험의 틀을 벗어날 때에야 보이고 들리는 세상이 있습니다. 신앙이 바로 그것이죠. 지극히 현실주의적이고 이성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인정할래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사고의 틀 안에서는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허황된 이야기였을 테니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하는 질문도 짐짓 부활을 믿지 않는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 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의도를 모르셨을 리 없겠죠. 그래도 그들의 그러한 의도 자체를 직접적으로 나무라진 않으십니다. 의외로 예수님의 대답은 상당히 논리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두가이파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들이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성경의 표현을 빌려 부활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즉, 오경에 적혀 있는 가시덤불 이야기 안에서 모세가 하느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불렀 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십니다. 어찌하여 모세가 이미 죽은 조상들의 이름을 사용해 하느님을 불렀겠느냐는 것이죠. 이미 죽었지만, 지금은 다시 살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 아니냐는 논리입니다. 하느님 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살아 있다는 말씀과 함께요. 참으로 기가 막힌 우문현답입니다. 성경 저자는 그 후로 예수님께 감히 묻는 자가 없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하느님이 진정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심을 믿는 다면 아마도 부활을 믿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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