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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선사시대의 살림집
한마음   [누리집] 2008-09-18 11:57:33, 조회:1,606, 추천:29
1. 선사시대의 살림집


(1) 움집(발굴을 통해 알려진 자료)

① 일반형 타원형이거나 부정원형-- 지름 대략 6m 내외, 깊이 60cm정도
작은 규모(황해도 봉산 지탑리 3호)--지름 3.5m 깊은 움집(평양 궁산리 1호) 깊이 1.2m

② 바닥은 흙바닥이거나 돌을 깔아 정리하기도 한다. 오산리 1호,서포항 3호는 바닥의 진흙을 다져서구웠다

③ 바닥에 화덕을 설치하나 그 위치는 일정하지 않다. 화덕 주변에 돌을 더 설치하여 여열을 이용하는 지혜
를 발휘하기도 한다.암사동 움집은 평면과 화덕 모양이 비슷하다.궁산리 2,5호 집에서는 화덕 옆에 진흙으
로 똬리처럼 시설.

④ 저장용의 질그릇 항아리를 바닥에 묻어 세우기도 한다. 지탑리 1호집 저장시설은 5곳. 그 중 하나는 화덕
옆에 위치

⑤ 한편에 출입구가 있다. 발디딤을 시설하고 오르내리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한강변의 암사동 유적지 움
집 출입구는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층계로 발 딛을 자리를 마련하였다. 출입구의 방향은 대략 동남방에서
서남향 사이에 있다.

(2) 움집 짓는 방식

가. 중앙에 일렬로 기둥을 묻어 세우는 방식

나. 중앙에 네 기둥을 세워 골격의 중추를 이루게 하는 방식

다. 기둥 구멍에 잔돌을 넣어 주초로 삼은 방식

라. 너러석돌을 바닥에 깔고 주초석으로 이용한 방식

마. 가는 나무를 집 둘레에 촘촘히 일으켜 세워 골격과 지붕과 벽체 구실을 함께 하도록 구조한 방식

바. 벽체와 지붕 구조를 엄격하게 구분해서 시설하는 방식에서는 서까래 구조가 완연하다.

사. 골격이 되는 나무 사이를 산자로 엮거나 끈으로 두름 엮어 간격을 메우고는 초재(草材)나 여타의 재료로
외기를 차단할 수 있게 막는 방식

지탑리 유적지에서 조사된 움집 일람표

구분 평면형 바닥 저장움 기둥구멍 출입구
1호 유적 모죽인 방형 한변 7m정도 모래층을 파고 진흙을 펴서 다짐 - 움의 깊이 0.4m 타원형으로 긴 변이 약 1.2m 토기의 밑부분을 잘라내어 爐옆에 묻음

없음

서남쪽 - 경사로 동북쪽 - 폭 1.1m의 계단식
2호 유적 모죽인 방형 한변 6.4m정도 모래층을 다짐 - 움의 깊이는 약 0.55m 중앙부 - 벽쪽으로 5개 동남쪽 모서리에 계단식 출입구 - 폭 0.5m
3호 유적 모죽인 방형 한 변 3.2∼4.0m정도 진흙을 다짐 - 움의 깊이 0.3∼0.35m 타원형으로 긴변이 약 1.1m - 크고 작은 20개의 구멍 - 동,서,남 쪽모서리는 경사가 있음 동남쪽 계단식

한강 암사동 유적지 움집 일람표

구분 평면 크기   (단위m)   길이×폭×깊이 출입구 기둥구멍 (개)
크기 형태 위치 개수 위치
1호 모죽인 방형 4.4×4.1×0.37 0.72×0.58 장방형 중앙 - - 7
2호 모죽인 방형 4.4×4.1×0.37 0.72×0.58 장방형 중앙 - - 7
3호 모죽인 방형 4.4×4.1×0.37 0.72×0.58 장방형 중앙 - - 7
4호 모죽인 방형 4.4×4.1×0.37 0.72×0.58 장방형 중앙 - - 7
5호 모죽인 방형 4.4×4.1×0.37 0.72×0.58 장방형 중앙 - - 7
6호 외곽
장방형 7,9×6.6×0.87 0.65×0.6 원형 중앙 1 서남 6
내부
원형 4.9×4.9×0.52

(3) 움집의 구들 시설

① 함북 웅기에서 신석기시대 움집이 발굴되었는데 그 중에는 고래를 켜고 구들을 시설하였을 구조를 보이는 예가 발견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시대가 앞선 구들시설로 알려지게 되었다.

② 수원의 철기시대 움집 구들 수원 서둔동 야산에서 발견된 7호 집터에서 아궁이와 고래가 있는 자취가 나타났다. 약 30cm정도의 흙벽돌을 세워 고래를 만들고 같은 벽돌로 구들장을 만들었다. 구들은 북벽과 서벽 밑으로 시설된 쪽구들의 형태이며 서편 벽 동편 끝에 굴뚝 자리가 있고 아궁이는 서벽 쪽에 있다.

③ 평안남도 북창군 대평리 움집터. 이 움집터에서도 구들 시설 발견. 역시 벽을 따라 꺾이어 시설된 쪽구들
이었다.   이 집터는 유적층이 3단 중복되어 있는데 제일 아래층은 B.C2∼1세기, 중간층은 A.D1∼2세기,
상층은 3∼4세기로 보인다. 이 지층에서 출토하는 철재는 매우 재질이 우수하다. 고구려 철재의 한 자취를
찾을 수 있다.

(4) 참고

① 움집의 유적

* 무산(茂山) 호곡동(虎谷洞)유적

함경북도 무산군 호곡동에 있는 신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에 걸친 움집 유적.
두만강 상류 계곡과 성천(城川)이 합류하는 유역에서 유적지가 널리 분포되어 있다.
호곡동은 그 중심지역에 해당한다. 제 1기에 해당하는 제 9호 움집은 정방형에 가까운데 한 변 길이가 3.8m
이며 깊이는 1.08m이고 동서남북 방향으로 기둥구멍이 15개 나란하다. 중심부에 화덕자리가 있는데,10㎝
정도 움푹하게 파고 그 둘레에 15∼25㎝정도 크기의 개울 돌 8개로 둥글게 조성하였다. 토기,돌도끼,방추자
숫돌, 흑요석기 등이 출토.

* 회령(會寧) 오동(五洞)유적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읍 오동은 두만강 중류 오른편 연안 평야지대에 있으며 청동시대에 취락주거지.
이 부근에는 성동(城東), 봉의(鳳儀), 검은개봉(黑狗峰), 금생(金生), 매지허리(沙乙峴) 등의 유적지가 분포
되어 있다. 오동은 이들 유적지의 중심부에 해당하며, 수만 평에 산재하여 있고 유물층은 선사시대부터 역
사시대에 걸쳤다. 1954년과 1955년에 발굴 그 중 6기의 집터와 작업장을 조사한 결과 토기, 석기, 골각기,
인골 등 5,000여 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움집터는 모두 장방형이며 안에 기둥구멍과 화덕자리, 석기를 만
들어 제작하던 자리가 발견되었다. 벽재로는 갈대와 사리나무, 진흙을 사용하였다. 대략 B.C6∼6세기 사람
들이 살던 흔적으로 보인다.

움집 평면 넓이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5.8×4.1m, 5.2×4.5m, 9.6×4.5m, 8.4×6.5m


<움집 평면, 단면, 입면>

② 마루가 있는 오두막집 경남 김해시 부원동 유적지에서 오두막집(다락집)의 자취가 조사되었다.
고온 다습한 남방에서 출현하는 다락집의 예는 그 구조상 자취를 남기기 어려우나 이런 유적의 존재로 해서
다락집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주거지유적 일람표

시대구분 유적명 위치 연대
구석기 검은모루 평양시 상원군 흑우리 60만∼40만년 전(전기)
굴포리 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 10만년 전(중기)
전곡리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전기)
빌레못동굴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면 (중기)
석장리 충청남도 공주군 석장리 2만년전(후기)
신석기 암사동 서울 강동구 암사동 -
서포항 함경북도 선봉군 서포항 -
궁산 평안남도 온천군 운하리 B.C 4000년 전후
지탑리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 -
토성리 평안북도 중강군 토성리 -
동삼동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
청동기 오동 함경북도 회령군 오동 -
공귀리 평안북도 강계시 공귀리 -
호곡동 함경북도 무산군 호곡동 B.C 6∼4세기
세죽리 평안북도 영변군 세죽리 -
흔암리 경기도 여주군 흔암리 -
교하리 경기도 파주군 교하리 B.C 6∼7세기 초촌면
옥석리 경기도 파주군 옥석리 -
송국리 충청남도 부여군 송국리 -
철   기 세죽리 평안북도 영변군 세죽리 -
노남리 자강도 시중군 노남리 -
부소산성 충청남도 부여읍 -
중도 강원도 춘천시 중도 -
서둔동 경기도 수원시 서둔동 -



2. 고구려의 살림집


(1)『後漢書』동이열전 제75

습속이 근검하여 나라님을 위해 궁실 가꾸기를 좋아한다.

其俗節食 好活宮室

(2) 『三國志』위지동이전 제30

고구려(요동의 동쪽. 남쪽으로는 朝鮮, 濊貊)과 접하고 동편에 沃沮, 북쪽으로 夫餘국과 접하고 있다.)
영토에는 산이 많고 골이 깊고 평야가 없어서 보통 산골짜기 기슭에 의지하고 집을 짓고 바위틈에서 솟는
물을 마신다.

多大山谷 無原澤 隨山谷以爲居 食澗水

토지가 척박하여 곡식이 넉넉지 못하나, 백성들은 근검절약하고 궁실 가꾸기를 즐겨하며, 궁실 좌우에 큰집
을 짓과 귀신과 영성(靈星) 등에 제사를 지낸다.

왕실의 동편에 작은 성을 쌓고 조복(朝服) 등을 간직한다. 때때로 그 의복을 꺼내다 입는데 그 작은 성을
책구루(瓔溝婁, 구루는 '구라'라는 말로 곳집[倉]을 의미하기도 함)라 부른다. '구루'라는 말은 고구려에서는
성(城)을 일컫는다.

고구려의 귀족들은 농사를 짓지않는다. 그런 좌식하는 사람들이 1만여호에 이르렀다. 이들의 집에서 심부름
하는 사람들은 멀리서부터 쌀이나 곡식을 져오고 또 물고기나 소금을 공급하였다.

나라에서는 따로 큰 창고(大倉)를 설치하지 않고 대신에 집집마다에 작은 창고(小倉)을 지었다. 이 작은 창
고를 이름하여 부경(부京)이라 불렀다.

[참고-- 申榮勳 : 「咸陽介坪里鄭氏宅小倉」·『美術資料』 1972년, 처음으로 부경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고구려에서는 혼인이 정하여지면 신부집에서는 살림집 뒤에 따로 작은 집을 짓고 신랑을 맞아 살림을 하게
하였다. 그 작은 집을 서옥(壻屋)이라 불렀다.

『삼국지』 고려조 기록- 其俗作婚姻 言語己定 女家作小屋於大屋之後

(3) 『周書』열전 제41. 異域 上

토지는 매우 척박하여 백성들의 집은 절검(節儉)하여 겨우 모습을 이루는 정도에 그치고 여럿이 한 방을
쓰고 함께 잔다.

불교를 돈독히 믿으면서도 음사(淫祀)하기를 즐겨하고 부여신(夫餘神)과 등고신(登高神)을 모신 묘(廟)에
제사지낸다.

평양성 동서 길이가 6리 가량이며, 남쪽은 패수(浿水)에 연하였다. 성내에는 큰 창고가 있어 군수물자를 비
축하여 두었다가 적이 쳐들어오면 성문을 닫고 고수하였다.

임금은 왕성 옆에 따로 집을 지어 두나 늘 상주하지 않았다.

(4)『舊唐書』 열전 제149

살림집을 반드시 산곡(山谷)에 짓는데 대부분 이엉을 이어 지붕을 만든다. 다만 부처님을 모신 절이나 신묘
(神廟)·왕궁·관부(官府)건물에는 기와를 이었다. 가난한 백성들의 습속으로 겨울에는 모두 장갱(長橙,구들)
을 설치하고 불을 지펴 따뜻하게 지낸다.

基俗負?者多冬月 皆作長穀 下然?火以取暖


<고구려 정침내부의 생활상 -안악 제3호분 살림집의 구성>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살림집의 여러 부속 건물들 >



3. 백제의 살림집


(1) 『魏書』 열전 제88

땅이 습하여 대부분의 백성들은 산에 산다.


(2) 『唐書』 열전 제41 이역 상

백성들은 성 내외에 집을 짓고 살았고 도성 내에서는 승니(僧尼)가 많고 사탑(寺塔)이 대단히 많다.


4. 신라의 살림집


(1) 『唐書』 동이열전 제145

겨울에는 방안에 화덕을 설치하고 여름에는 음식을 얼음 위에 둔다.


(2) 신라 서라벌의 대규모 저택 - 사절유택

일연스님은 신라를 말하는 첫머리에 시조 혁거세 치적에 앞서 「삼십오금입택」과 「사절유택」항목을『삼국유사』에 실었다. 이는 아주 중대하여 신라를 말함에는 반드시 거론되어야할 내용으로 여겼나보다.


『삼국유사』의 기사.

又四節遊宅
春東野宅 夏谷良宅 秋仇知宅 冬加伊宅 (가)
第四十九憲康大王代 城中無一草屋 接角連墻 歌吹滿路 晝夜不 絶 (나)

이 기사는 (가)와 (나)로 구분할 수 있다. (가)는 사절에 따라 서라벌의 명소로 시민들이 이름난 제택을 순방
한다는 것이고 (나)는 신라 성기인 헌강왕 대에 서라벌 도성 내에 초가가 한 채 없이 다 기와집 만이었다는
사실을 기록하였다.

(가)의 네 곳 뛰어난 서라벌의 큰집들은 육촌(六村)으로 대표되는 신라를 이룩한 부족들이 소유하고있는
본댁(本宅)에 해당한다고도 해석하고 있다.

『삼국유사』육촌 기록은 자세하다.

역시 원문을 옮긴다.

辰韓之地 古有六村

一曰閼川 楊山村 南今曇巖寺 長曰謁平 初降于瓢植峰 是爲及梁部 李氏祖 弩禮九年置 名及梁部 本朝太祖
天福五年庚子 改中興部 波替 東山彼上 東村屬焉

二曰突山高墟村 長曰蘇伐都利 初降于兄山 是爲沙粱部 鄭氏祖 今曰南山部 仇良伐 麻等烏 道北 廻德等
南村屬焉

三曰茂山 大樹村 長曰俱(仇)禮馬 初降于伊(比)山 是爲漸(?)梁部 又牟梁部 孫氏之祖 今云長福部 朴谷村等
西村屬焉

四曰?山 珍支(寶支, 氷之)村 長曰智伯虎 初降于花山 是爲本彼部 崔氏祖 今曰通仙部 柴巴等 南村屬焉
致遠乃本彼部人也 今黃龍寺南 味呑寺南 有古墟 云是崔候古宅也 殆明矣

五曰金山加里村(今金剛山栢栗寺之北山也) 長曰祗(只)? 初降于明活山 是爲漢(韓)岐部 裵氏祖 今云加德部
上下西知 乃兒等 東村屬焉

六曰明活山 高耶村 長曰虎? 初降于金剛山 是爲習比部 薛氏祖 今臨川部 勿伊村 仍仇?村 關(葛)谷等
東北村屬焉

육촌은 서라벌의 동서남북과 도심에 해당하는 양산촌과 진지촌으로 판도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절유택은 사방의 촌주 본댁을 찾아 순례하는 즐거움이었음이 밝혀진다.

사절유택은 <삼십오금입댁(三十五金入宅)> 중에서도 뛰어난 네 집이었다. <삼십오금입댁>은 서라벌의
부자집 35개를 선정한 것인데 이를 <쇠드리댁>이라 속칭한다 하며 <부윤대택(富潤大宅)>을 일컫는다고
『삼국유사』서술하였는데 실제로는 35금입택이라면서도 39개의 집 이름이 거론되었다.

1.南宅 2.北宅 3.?比所宅 4.本彼宅 5.梁宅 6.池上宅(本彼部) 7.財買井宅(庾信公祖宗) 8.北維宅
9.南維宅(反香寺下坊) 10.隊宅 11.寶支宅(反香寺北) 12.長沙宅 13.上櫻宅 14.下櫻宅 15.水望宅 16.泉宅
17.楊上宅(梁南) 18.漢岐宅(法流寺南) 19.鼻穴宅(法流寺南) 20.板積宅(芬皇寺上坊) 21.別敎宅(川北)
22.衙南宅 23.金楊宗宅(梁官寺南) 24.曲水宅(川北) 25.柳也宅 26.寺下宅 27.沙粱宅 28.井上宅
29.里南宅(?所宅) 30.思內曲宅 31.池宅 32.寺上宅(大宗宅) 33.林上宅(靑龍之寺東方有池) 34.橋南宅
35.巷叱宅(本彼部) 36.樓上宅 37.里上宅 38.椧南宅 39.井下宅

이 열기 된 부윤대택은 신라통일기 서라벌에 위치하던 이름난 살림집들로 보인다.


5. 부여(夫餘, 고주몽의 출생지)의 살림집


『三國志』위지동이전 제30

백성들의 호수가 8만여호. 백성들은 지표상에 집을 짓고 살며 궁실과 창고와 감옥 등이 있다.
산이 많으나 넓은 들도 있어서 동이(東夷)의 나라 중에서는 제일 넓은 들을 가졌다.
토지는 비옥하여 오곡의 소출이 많다.


6. 삼한의 살림집


(1) 『後漢書』 동이열전 제75

① 한(韓)

성곽은 없고, 집은 움집으로 그 형상은 무덤처럼 생겼으며 출입구는 위쪽에 있다.

無城廓 作土室形如? 開戶在上

② 진한(辰韓)

성곽이 있고 지표 상에 지은 집이 있다. 쇠가 나고 곡식이 풍부하여 백성들은 즐겨 노래하고 춤 추며
술 마시고 악기를 연주한다.

③ 변한(弁韓)

진한 사람들과 섞이어 살며, 성곽의 시설과 의복, 언어, 풍속은 진한과 같다.


(2) 『三國志』 위지 동이전 제30

① 마한(馬韓)

백성들이 사는 마을이 산기슭과 바닷가에 흩어져 있고 마을에는 성곽 시설이 있다. 마한은 작고 큰 나라가
50여 개인데 작은 나라는 수천 호, 큰 나라는 십여만호를 거느린다.

백성들의 거처는 초옥을 움집처럼 지어서 외형은 마치 무덤 모양과 같고 출입구는 지붕에 설치된다.
이 집에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사는데 장유의 구별이나 남녀의 구별을 위한 구획은 없다.
귀족이나 관원의 집에는 성을 쌓았다.

② 변진(弁辰)

변한, 진한 합하여 24개국이 있고 큰 나라는 4, 5천의 집을 작은 나라는 6,7백의 집을 거느렸다.
토지가 비옥하고 수확이 많아 살기 좋은 고장이다.

『魏書』에서는 이 나라의 집들은 둥근 나무를 포개 쌓아 만드는데 <作屋橫累木爲之>
그 형상이 중국의 감옥을 닮았다. <주 : 둥근나무를 포개어 짓는 집은 귀틀집이다.>



한옥문화원 자료실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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