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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김미루 사진전
한마음   [누리집] 2014-04-07 05:17:38, 조회:1,368, 추천:26
사막에서 먹고 자며 찍은 사진
김미루 사진전, 트렁크갤러리



 
에르그 체비, 모로코, 사하라 

      김미루의 사진전 <낙타가 사막으로 간 까닭은?>이 트렁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김미루는 이미 유명해진 적이 있다. 2011년 벗고 돼지우리에 들어간 <돼지와의 동침 3박4일>퍼포먼스를 통해 뭔가 보여줬다. 보도자료에서 이번 전시의 제목을 발견하고는 “낙타우리도 있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진을 열어보니 역시 낙타는 우리에서 서식하진 않았으며 사막이란 공간에 거주하는 낙타 곁으로 가서 찍은(찍힌) 사진이었다. 사진을 열어보니 역시 벗고 찍은 사진이었다. 딱 1년 전인 2013년 4월 사진마을에 소개했던 김혜진의 전시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본인이 프레이밍을 정해주고 카메라를 넘기면 셔터를 누가 누르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사진에 사진작가가 찍혀 있다고 해서 누가 찍었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추후에 작가와 통화하거나 이메일 인터뷰를 할 수 있으면 자세한 궁금증은 추가 하기로 하고 전시가 이미 시작되었으니 작가노트와 사진을 먼저 소 개하기로 한다.  그전에 기본적인 이해는 하고 들어가야겠다. 첫 번째 항목은 진정성과 창작성이다. 김미루는 2009년에 폐허, 교량, 공장 같은 곳에서 누드 퍼포먼스를 한 적도 있었으니 이번이 내가 알기로는 세 번째다. 따라서 치기로 한번 해 보는 작업은 아니니 진정성을 의심할 수는 없다. 또한 본인의 누드가 들어갔으니 다른 사람이 “참고하거나, 모방하거나, 표절 하거나” 해서 비슷하게 찍기가 힘들 것이다. 최소한 어떤 기업에서 사람의 누드가 들어간 돼지우리나 폐허나 교량 위의 작업을 상업광고에 이용 한다고 하더라도 확실하게 사람이 달라질터이니 표절의 시비에서 자유로워 질 것이다. 성별과 체형과 피부색이 비슷한 모델이 들어가면 표절이라고 볼 것인지 궁금하긴 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으니 뭐가 새로울까?


 
 검은 사막, 이집트, 사하라



 



 



 



 



 



 

      두 번째 항목은 왜 찍었는지의 이유다. 진정성이 있다고 했고 작가노트도 
      있고 평론가들의 이야기도 있는데 그래도 왜 이런 사진이 필요한지 의문이 
      드는 사람들을 위한 이해다. 이것은 접촉이며 체험이다. 재건축을 위해 
      허물어버린 폐허를 찍은 사진과 그 폐허에 직접 (작가가 옷을 다 벗고) 
      들어가서 찍은 사진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사진은 눈으로 보고 그것을 
      따왔으니 환유적 이미지이다. 피사체를 어루만진 빛이 필름에 감광된다는 
      점에서 접촉성이 있다. 거기에 더해 작가가 직접 사진 속에 들어갔다. 
      어찌 사진에 찍히니 저 포인트에만 머물렀을 것인가. 이 자리 저 자리 옮겨
      보고 앉아보고 가장 적합한 자리를 골랐을터이니 접촉을 넘어서 체험의 
      수준까지 올라갔으며 궁극적으로는 돼지와 100여시간을 지내면서 동화되는 
      수준까지 갔다. “인간은 돼지처럼 ~하다”고 하는 문장의 빈자리에 탐욕을 
      넣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인간이 돼지보다 더 탐욕스러울 수 있다. ‘더럽지 
      않음’을 넣는 것도 틀렸다. 돼지가 더 깨끗하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 
      “인간은 돼지다”라고 하는 것이 은유라면 김미루의 “돼지우리 속에 든 인간” 
      사진은 코드와 패러다임을 깨는 환유적 작업이다. 롤랑 바르트가 “낙타와 
      같이 뛰어가는 인간의 알몸”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급히 궁금해진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존재를 찾고 있었던 바르트였으니 화를 내면서 외면했
      을 것이다. <낙타가 사막으로 간 까닭은?>의 보도자료엔 <요르단 사막
      생활 이미지>와 <유목민생활 동영상>도 들어있어서 사진작가 김미루가 
      사막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이 모두 사진의 진정성을 보완하려는 
      자료들이니 꼭 같이 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어떤 블로그에서 
      김미루의 인터뷰기사를 본 적이 있다. “본인의 누드 작업이니 몸매관리가 
      필요하겠다”라는 질문에 “몸매 관리를 위해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면서
       “운동은 달리기와 등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요즘은 복싱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꼭 필요한 질문이었고 답변이었다고 생각한다. <돼지와의 동침>
      작업과 <낙타가….>의 작업을 비교하면서 그 사이에 운동을 더 열심히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르단의 사막에서 산다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니 이제 이 작업을 왜 했는지는 더 궁금해하지 말자. 
       
       마지막으로는 이 작업들이 “아름다운가? 혹은 볼 만한가?”에 대한 이해다. 
      그렇다. 낙타란 동물이 사막과 어울리듯 김미루도 낙타와 사막과 잘 어울렸다.
      
      
      [작가노트]
       낙타는 왜 하필 사막으로 가서 살게 되었을까? 사막은 가혹하다. 
      모든 생물로부터 생명을 빼앗는다. 낙타는 지구상에 가장 가혹한 곳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 왜? 낙타는 평화를 원했기 때문이다. 낙타는 
      무기가 없다. 타자와 싸울 욕망이 없다. 그래서 쫓기고 쫓기는 수밖에 
      없었다. 쫓기다 보니 침략자들이 더 이상 침략할 수 없는 곳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그곳이 바로 사막이었다. 그 여로에서 낙타는 사막이라는 각박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갔다. 낙타처럼 거대한 포유류가 사막
      에서 산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낙타는 결국 자기가 원하던 평화를 
      찾은 것이다. 사막에는 그를 괴롭히는 사자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이 사막으로 따라 들어왔다. 지구의 모든 환경을 정복하고 
      싶어하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사막으로 온 것이다. 인간은 사막처럼 뜨겁고 
      메마른 곳에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낙타라는 사막의 동물을 길들이게 
      된 것이다. 인간의 삶의 영역이 넓어진 것이다. 인간은 사막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물과 초원을 찾아다녔다. 인간에게 영양과 교통과 안식처를 제공
      하는 낙타와 더불어. 그러나 낙타야말로 인간을 동반자로 선택한 주체일지도 
      모르겠다. 사막에서 평화를 발견하는 그들의 예지를 우리 인간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낙타의 평화를 우리 인간은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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