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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Jean Francois Millet(1814-1875)
한마음   [누리집] 2009-03-08 04:14:34, 조회:1,442, 추천:34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태어난 밀레는 푸생,샤르댕,르냉,도미에 등의
    영향을 받아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시대를 활짝 열었으며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으로 이사하면서 ‘바르비종파’를 이끌었다.
    그는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을 시작으로 화단이 외면했던
    농민들의 생활상을 시적 정감과 우수어린 분위기로 담아내
    훗날 프랑스 최고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중 씨뿌리는 사람(50), 이삭줍기(57). 걸음마(58),
    만종(59) 등은 발표 당시부터 주목을 끌었으며 만년의 가작 봄에는
    빛의 효과에 있어서 인상파를 예고하였다. 그 밖에 우유를 짜는 여인
    저녁기도. 실 잣는 여인. 괭이 가진 남자
    젊은 어머니와 아기 등이 있고, 소묘와 판화 등의 작품도 많다.
    1월 햇살은 영양 실조라도 걸린 양 윤기가 없어지고
    꺼칠해졌다. 단풍 장신구를 떼버린 나무들은 시간의 나이테 속에
    무성 했던 지난날의 추억을 새긴다. 스산한 바람이 수비가 뚫린
    마음의 골문에 매순간 고독을 골인한다. 이처럼 외로움이 사무치는
    달 11월에는 곡식이 기득찬 곳간을 바라보는 농부의 느긋한 마음 같은
    밀레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 The Gleaners 이삭줍기는
    만종과 더불어 밀레의 가장 유명한 작품의 하나다.
    밀레가 그린 것은 여름의 노동의 모습이었고 노동에 의한 피로를
    표현하였다 밀레는 대중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인기 순위 1위화가다. 그의 그림은 150년이 넘도록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그 인기가 식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근면하고 소박한 농부들의 삶을 화톳불 같은
    따뜻한 색채와 구도로 화폭에 재현했기 때문이리라.

[그림]Jean Francois Millet
◈ The Angelus(1857 - 1859)



밀레의 작품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인 The Angelus<만종은
하루의 일이 끝난 뒤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이다.
만종의 구상은, '하루의 노등이 끝났을 때, 교회의 저녁 기도회
종소리가 들려 오자, 젊은 부부는 서로 마주 서서 같이 기도를 드린다.
이런 단순한 화면이 인류의 영원한 모습이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이발소 등에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그림으로
이발소 그림으로 오해받기도 하였다.
농부의 삶을 가장 진솔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림]Jean Francois Millet
◈ The Sower(1850)


씨를 뿌리는 남자의 역동감 넘치는 포즈는 약간 비뚜름한
지평선의 불안한 배경과 어울려 극적인 상황을 예시해 주고 있다.
대지와 인간의 관계가 흥미롭게 드러나고 있다. 밀레는 1849년
파리 근교 바르비존이란 작은 마을로 찾아든다.
이 마을엔 밀레 말고도 자연을 동경해서 찾아든 화가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가리켜 미술사에서는 바르비존파(派)라고 부르고 있다.
바르비존을 무대로 한 자연파 화가들의 명칭이었다.
밀레의 농민 화가로서의 활동도 이 마을로 들어오면서 본격화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많은 대표적인 농민화들이 여기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림]Jean Francois Millet
◈ 건초를 묶는 사람들



밀레가 바르비존으로 오면서 그 해 살롱에
출품한 작품으로, 점차 농민화의 전경을 드러내고 있다.
밝게 쏟아지는 햇볕 속에 건초를 묶고 있는 두 남자와 왼편에
건초를 긁어 모으는 여인의 모습은 일하는 즐거움과 노동의
신선함을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특히 명암의 강한 콘트라스트가 주는 긴장감과 더불어 거대한
자연과 투쟁하는 인간의 숭고한 모습이 극적으로 각인되어
있다고 하겠다. 밀레의 농민화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요소 역시
자연과 인간의 대비적이면서도 조화 있는 관계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Jean Francois Millet
◈ 채석장



밀레가 옮겨가 산 바르비존은 가난한 한촌이었다.
밀레도 이 마을의 가난한 농부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의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아마도 밀레의 농민화가 너무 나도
비참하게 보인다는 평도 어쩌면 이 가난한 마을의 정경을 솔직하게
담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농민화와는 다소 다른 소재의 그림이지만,노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티브의 애착은 밀레의 작품 밑바닥을 관류하고 있다.
후기의 농민화에서 보는 정태적(靜態的) 묘사와는 달리, 여기서는
동적(動的)이면서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해 보이고 있다.
돌 틈바구니에 꽂은 지렛대에 매달려 있는 두 인물의,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동작은 화면에 사선(斜線)으로 달리는
시각적 이동으로 인해 단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 시기
밀레는 특히 미켈란젤로가 묘사한 인물의 데생에 관심을 기울 였는데,
그것은 인간의 육체를 통해 나타나는 고통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밀레의 작품 가운데서는 보기 드문 활기와 박진감을 주고 있다.

[그림]Jean Francois Millet
◈ 어머니와 아들(1857)



밀레는 두 번째 아내 카트리느와의 사이에 9명의 자녀를 두었다.
아내 카트리느는 아내로서 뿐 아니라 어머니로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밀레는 갸륵한 어머니로서의 카트리느와 그 아이들을 모델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다. 견고한 돌문 사이로
아이와 어머니의 모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드러나고 있다.
두 아이의 천진한 동작과 어머니의 보살핌이 밀레의 눈을 통해
영원화되고 있다.

[그림]Jean Francois Millet
◈ 자비심(1858-59)



밀레가 사망한 후 그 행방이 미스터리로 남았던
이 작품은 최근 밴더빈트 콜렉션을 통해 10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밀레의 3대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성경의 교훈인 자비심을 가르치려는 어느 여인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줄 빵 한 조각을 아이에게 건네는 작품이다.
이것을 보면서 처음엔 무슨 장면인가 한참 고심을 하게 되지만
작품의 의도나 상황을 깨닫고 나면 밀레의 생각을 볼 수 있다.

[그림]Jean Francois Millet
◈ La becquee



이 작품의 원제는 쪼아 먹다 [bwcquter]에서 나온 명사 'La becquee'이
다. 어미새가 새끼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장면에서 힌트를 얻은 듯,
그러한 정경을 인간 세계로 가져 왔다. 마치 어미새가 새끼새에게
주둥이로 먹이를 먹여 주듯이, 어머니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숟가락으로 떠먹이고 있다.
자매인 세 어린이가 나란히 앉아 있고 어머니는 막 가운데 막내인
듯한 어린애에게 숟가락을 건네고 있다. 왼쪽 아이는 곧 자기 차례가
올 것을 대기하고 있는 자세이고, 오른쪽 아이는 언니답게
'자, 먹어.'하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부모와 자식간의 정애(情愛)가 실감있게 묘출되고 있다.
밀레 자신의 가족이 모델이었을 것이다.
[그림]Jean Francois Millet
◈ The Knitting Lesson(1860)



뜨개질 수업이라는 작품을 보면 그가 왜
그처럼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지 실감 할 수 있다.
두퉄한 스웨터에 시린 가슴 파묻고 싶어지는 겨울날 어머니와 딸은
양지바른 실내에 앉아 뜨개질이 한창이다. 창문에 스며드는 진주 빛
햇살이 난로인 양 모녀를 따끈하게 덮힌다.
아직 뜨개질이 손에 익지 않은 어린 딸이 못내 안타까운 것일까?
마음이 조급해진 어머니가 자식의 두 손을 잡고 뜨개질을
시연한다. 필경 어머니는 사랑스런 딸이 한 올 한 올 떠가는 뜨개질
속에 꿈과 미래와 사랑을 담아 완성해주기를 바랬으리.
스웨터처럼 포근하게 마음을 감싸주는 이 작품은 농부 화가로
불렸던 밀레의 농촌화중 하나다.
그는 늘 연민의 눈으로 농부들을 바라보았으며 그들의 질박한
일상을 마음의 고향과 같은 화면에 묘사했다 밀레가 그토록 위대한
화가로 칭송받는 까닭을 한지인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밀레는 자연 그대로인 프랑스 농부들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했다. 그리고 농부라는 존재를,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해
우리들에게 영원히 각인시켜 주었다. 그
는 인간, 아니 더 나아가 소박하고 성실한 노동자의 본질 그자체를
속속 파악했던 것이다."
[그림]Jean Francois Millet
◈ 낮잠



일을 마치고 낮잠을 즐기는 농부의 부부를
약간 아래쪽에서 비스듬한 구도로 붙잡고 있다. 남자의 상체에
기대어 자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반쯤 드러나 있는 정겨운 모습은
농가의 평화로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파스텔 특유의 경쾌한 데생 처리가 순간의 포착에 더욱 어울리는 것을
엿보여 준다. The Knitting Lesson 속에서도 이런 농부들에
대한 화가의 진한 애정이 묻어난다. 밀레는 그림을 통해
칼 날같은 겨울 바람을 막아줄 포근한 스웨터가 되고 싶은 모성을
감동적으로 보여 주었다. 때 맞춰 딸의 서투른 뜨개질을 가르치는
어머니의 심정에 맞춤인 시가 있어 소개한다 어린아이가 성정한다는
것은 혼자해야 할 일이 한 가지씩 늘어 난다는 뜻이다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은 안다 아이가 맨 처음 숟가락을 잡고 입으로
먹을 것을 떠 넣을 때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기쁨을 -------
세상은 촘촘한 거미줄과 같은 곳이어서 그곳에 날개가 걸리는
나비가 되지 않으려면 수없이 많은 학습과 훈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안도현의 '아침인사'중 이명옥글을 중심으로



The Sheep Meadow, Moonlight,Oil on canvas,Musée d'Orsay, Paris.





The Church of Gréville,1871-74,Oil on canvas,Musée d'Orsay, Paris





The Bouquet of Daisies,1871-74,Pastel on beige paper,Musée d'Orsay, Paris.





Shepherdess with her Flock,1864,Oil on canvas,Musée d'Orsay, Paris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과 더불어 밀레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그림에는 극적인
    사건이나 일화적인 요소는 조금도 보이지않는다.
    그저 추수가 진행되는 편편한 들판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세 명의 여인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아름답지도 우아하지도 않으며,
    그림 속에는 전원적 목가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제목부터,
    그리고 인물들의 익명성을 넘어 단지 노동하는 사람들의
    개인적 세계를 강조하고 있다.

    동일한 주제를 다룬 쥘 브로통의 1859년 작품은
    풍속화 형태로 그림 전체가 이삭 줍는 여인들의 흥겨움과 질펀함으로
    술렁이고 있으나, 이와는 달리 밀레는 강건하며 간략한 노동하는
    세 여인의 육체로 힘을 집중시킨다. 이는 마치 조각처럼 각인된
    육체가 가난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작품은 1857년 살롱전에 출품되어 비평계에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자연주의의 옹호자인 카스타나리는
    "빈곤에 대한 성실한 탐구와 결코 허위나 과장이 아닌, 자연에
    대해서 일찍이 호메로스나 베르길리우스가 발견했던 것과도 같은
    위대한 구절들 가운데 하나"라며 칭송하였다. 반면 보수적 비평가들은
    "누더기를 걸친 허수아비들"이라는 논조로 인물들에게 빈곤을 관장하는
    세여인들 이란 이름을 헌정한다. 이에 대해 밀레는
    "나는 평생을 두고 들밖에 보지 못했으므로 그것을 솔직하게 그렸을 뿐이다" 라고
    말한다.

    비스듬한 모습 속에 가려진 피곤한 얼굴, 노동으로 굽은 손,
    전혀 꾸밈없는 그저 실용적인 작업복, 이렇게 세부적인 것까지
    놓치지 않은 밀레의 섬세한 감성과 화법이, 풍요로운
    도시 풍경에 가려졌던 농경을 또 하나의 당당한 현실로 만들어 놓는다.
    흔히 밀레를 "농부들의 화가"라고 부르는데, 이는 밀레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의 작품 활동이 전적으로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부들에게
    할애되었기 때문이다.

    이삭 줍기가 보여주는 장면에는 놀라울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듯하다.
    그림은 늦여름의 황금빛 보리들을 추수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온 마을이 추수에 열중해 있으며, 추수된
    보리들은 커다란 보리 짚단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렇게 한층한층 쌓여 가는 보리 짚단은 다가올 추운 겨울을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풍요의 상징인 듯하다.

    그런데 밀레가 이 그림을 "추수"라고 하지 않고, "이삭 줍기"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이 그림의 아름다운 전원 경치에서 눈을 돌려, 이삭 줍기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는 작품의 특성을 찾아보자.

    이삭을 줍고 있는 세 여인

    먼저 밀레의 그림을 잘 살펴보자. 세 여인이 땅을 향해
    몸을 구부린 채 추수하는 농부들이 흘린 보리 이삭을 줍고 있다.
    여인들의 뒤로는 마치 땅이 지평선을 향해 솟아오르는 듯 펼쳐져
    있으며, 그 곳에서는 일단의 농부들이 추수에 열중이다.
    그리고 이들의 왼쪽으로는 엄청난 크기의 보리 짚단들이 눈에 띈다.
    수평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마을의 모습이 뒷배경에
    나타나고, 그 앞에 말을 탄 남자가 보이는데 일꾼들을
    감독하고 있는 농장의 주인이다.

    그런데 이들 농부들과 비교하여 전면의 세 여인은
    이상하게도 고독해 보인다. 농부들과 여인들간의 거리도 무척이나
    멀어 보이고, 아무도 이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듯하다.
    이 여인들은 보리 추수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한 당시 사회의
    가난한 소외자들이다. 농장주가 불쌍히 여겨 추수하는
    농부들이 땅바닥에 흘린 보리 이삭을 줍도록 허락한,
    소위 보리 이삭을 줍는 여인들인 것이다.

    생명을 불어넣는 회화 기법

    만약 눈을 감고 이삭 줍기를 그려본다면, 우리의 머리 속에는
    이삭을 줍고 있는 세 여인만이 떠오를 것이다. 이것은 이 작품의
    구도나 색깔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밀레의 탁월한 회화 기법
    덕택이기도 하다. 밀레는 세 여인을 한 무리로 묶어 구성하였는데,
    즉 여인들의 모습과 움직임을 단순화시켜 마치 조각상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의 시선을 그림 속 인물들의
    세밀한 부분에 멈추게 하지 않고 전체 실루엣에 집중시킴으로써,
    그림 속 인물들을 전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런 구성이 자칫 그림을 지나치게 무겁게
    할 수도 있으므로, 밀레는 이를 피하기 위해 각 인물들에게 한 가지씩
    중요한 움직임을 부여했다.
    첫 번째 여인은 보리 이삭을 줍기 위해 팔을 뻗치고 있고,
    두 번째 여인은 보리 이삭을 주워담고 있으며,
    세 번째 여인은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고 있다.
    결국 세 여인은 보리 이삭을 줍는 일련의 연속 동작을 각자
    한 동작씩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밀레는 이 여인들을
    반원 형태의 축을 중심으로 위치시킴으로써, 여인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인들이
    하나의 보리 이삭이라도 더 줍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굽히고
    일으키는, 연속적이고도 고된 동작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밀레는 이 그림을 현장에서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작업실에서 순전히 기억만으로 그렸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소외된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

    19세기 중엽의 프랑스는 한참 산업 혁명을 겪고
    있었는데, 산업 인구의 도시 집중화로 가난한 농촌 지역의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었다. 따라서 과거 농촌 사회의 향수로 인해,
    일단의 화가들이 농부들과 농가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밀레의 이삭 줍기보다 2년 후에 그려진 쥘 브르통(Jules Breton)의
    이삭 줍는 여인들의 귀가가 이같은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쥘 브르동의 그림이 주는 메시지는 밀레의 사회적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밀레의 이삭 줍기와 달리,
    저녁 노을 속 웅장한 전원 풍경 속에서 그 날의 수확을
    자랑스러워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밀레의 사회적 리얼리즘은 당시 프랑스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당시는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기(예를 들어 1848년에는 민중 혁명이 일어나 루이 필립 왕이
    쫓겨나기도 했다)여서, 밀레의 작품들이 마치 민중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찾아 투쟁하라고 선동하는 것처럼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리의 유명한 연례 전시회인 살롱전에 전시된 밀레의
    그림들은 당시 비평가들의 혹독한 비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레는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외딴 농가에까지 밀레의 복제화를 걸어놓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실제 예술품의 주 고객층이었던 부유한 부르주아들은 밀레의
    그림들을 구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밀레는 1849년 퐁텐블로
    근처의 작은 마을인 바르비종에 정착하게 되는데
    , 이곳에 전원 경치를 중시하는 화가들이 모이게 되어
    유명한 바르비종파가 탄생하게 된다. 이후 밀레는 명예도
    벗어 던지고 돈을 위해 부자들의 초상화도 그리지 않으며,
    농촌 사회를 한시도 떠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작품 세계만을
    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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