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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자연주의] 장 프랑수아 밀레
한마음   [누리집] 2011-06-27 06:15:15, 조회:1,722, 추천:42
      
      [사실주의][자연주의] 장 프랑수아 밀레
      
      
      생   애 : 1814~1875 
      출   신 : 프랑스 
      대표작 : 이삭줍기, 만종, 걸음마, 씨뿌리는 사람, 우유 짜는 여인   
      특   징 : 농부들의 일상  
      
      개 요
      장 프랑수아 밀레는 프랑스의 화가로, 프랑스의 지방에 위치한 바비존 
      미술학교(Barbizon School)의 창립자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삭 줍기,' '만종,' '씨 뿌리는 사람' 등 농부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들로 유명하며, 사실주의(Realism) 혹은 자연주의(Naturalism) 화가라 
      불리우고 있다. 경건한 신앙심과 농민에 대한 애정으로 농촌의 풍경과 생활을 그렸다. 
      
      생 애 ……………………… 
      프랑스의 화가. 바르비종파의 주도적 인물로 소박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농민들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 밀레는 농사를 지으면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19세쯤 되어서는 셰르부르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1837년에 그는 파리로 와서 폴 들라로슈의 문하생으로 등록했는데, 
      이 화실에는 1839년까지 다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40년 파리 살롱전에 출품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가 낙선된 뒤, 
      그는 셰르부르로 돌아가 1841년말까지 그곳에서 지내면서 초상화를 그렸다. 
      1844년에 〈우유 짜는 여인〉과 파스텔화〈승마 교습〉으로 처음 성공을 거뒀는데, 
      〈승마 교습〉은 그가 1840년대에 그린 작품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특징으로 
      관능적 성격을 갖고 있다. 농부에 관한 주제는 1850년대초부터 그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지만, 이 주제가 처음으로 뚜렷하게 드러난 중요한 
      작품은 1848년 파리 살롱전에 입선한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 〉이었다. 
      이 그림은 나중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농촌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씨뿌리는 사람 〉·〈저녁기도〉·〈소치는 여인〉 등이 있으며 
      그외에 일상생활의 장면들을 묘사한 파스텔화 및 소묘들을 많이 남겼다.
      한동안 심한 고생을 겪은 밀레는 1849년에 파리를 떠나 퐁텐블로 숲속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에 정착했다. 
      그는 농부를 그린 그림을 계속 발표했고, 그결과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밀레의 입장을 옹호하던 그당시의 편지들은 그림에 대한 그의 접근방식이 근본적으로 고전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1860년대 중엽에 이르자 밀레의 작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1867년의 전시회에 9점의 주요작품을 출품한 뒤인 1868년이었다. 미국 보스턴의 미술관과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이삭줍기〉· 〈만종〉 등 밀레의 중요한 그림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만종〉은 해질 무렵의 빛의 효과를 이용해 시적 정감이 넘치는 분위기를 창조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화 풍 ……………………… 소박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농민들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 [1848]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 [1850] 씨뿌리는 사람 파리 살롱에서 밀레는 '이삭 줍는 사람들'과 '만종,' '이삭 줍는 사람들' 과 함께 걸작이라 평가되는 3개의 작품들 중에 가장 초기 작품인 '씨 뿌리는 사람'를 전시 하게 된다. 1850년에서 53년까지 밀레는 그가 가장 중요시했으며 가장 오랫 동안 작업하게 된 작품 '추수하는 사람들의 휴식시간'을 그리게 되었다. 미켈란젤로나 푸생과 같은 그의 개인적인 영웅 화가들에게 필적하기 위하여 그려진 이 그림은, 밀레의 그림 인생에 있어 농부들의 일상만을 상징적인 형태로 표현하기보다 사회적인 상황 자체를 상징적인 기법으로 나타내는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이 작품은 밀레가 날짜를 기록한 유일한 작품이며, 파리 살롱에서 1853년 2위에 해당하는 메달을 수여받으면서 공식적인 명예를 쌓도록 도와준 작품이었다. [1857] 이삭 줍는 여인들(The Gleaners) "추수 이후에 남겨진 이삭을 줍고 있는 모습을 그렸으며 곤궁에 처한 유럽과 아메리카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상징이자 기념이었다. 추수 이후에 남겨진 것들을 줍는 것은 사회에서도 가장 최하급의 일들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밀레는 이 작품에서 이 여인들을 마치 영웅과도 같은 구도 속에서 표현하고 있다. 이전에 그려졌던 첫번째 버젼에서는 옆에 시종까지 그려넣어져 마치 귀족이나 왕과 같은 분위기마저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빛이 열심히 일하는 그녀들의 어깨를 밝게 비추고 있다. 그들의 뒤로 수평선까지 끝없이 펼쳐진 밭은 드넓고 장대한 하늘아래 저물어가는 노을빛을 받아 금빛으로 물들어 있다. 이 세 명의 여인들의 모습은 이렇게 밝게 빛을 받은 밭과 달리 그림자가 많이 들어가 배경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1858] 걸음마 크지 않은 종이(29.5X36) 위에 크레용과 파스텔로 담백하고 부드러운 필치로 그림 [1863] 괭이 가진 남자 "1863년 살롱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꺼져버린 눈빛으로 바보스럽게 입을 죽이는 머리통 없는 괴물""(폴 드 생빅토르)이라며 비평가들은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들판이 원경으로 낮게 펼쳐져 있다. 무언가 태우는지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를 배경으로 한 농민이 이를 짚고 우뚝 서 있다. 구부정한 어깨, 푹 꺼진 눈, 마른 입술, 허름한 옷차림, 땅을 경작하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쉬는 참이다. 농민의 표정은 어둡다. 눈동자도 초점을 잃었고, 헤 벌어진 입술은 허옇게 말라붙었다. 지금 개간 중인 땅도 옥토가 아니다. 자갈밭이나 다름없다. 밀레는 휴식을 취하는 농민을 그리되, 힘든 표정을 제대로 표현한다." [1859] 만종 (The Angelus) "이 작품은 부유한 아메리카인이었던 토마스 G 애플튼의 청탁으로 그리게 된 작품으로, 1857년 여름에 교회의 뾰족탑을 배경에 더하면서 완성되었다. 밀레는 처음에 이 작품에 ""감자의 수확을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가 ""만종""으로 바꾸었다. 1859년, 작품의 구매자가 이 작품을 가져가지 못하게 되자, 밀레는 1865년부터 이 작품을 공개적으로 전시하게 되며 작품에 나타난 손을 여러번 바꾸게 된다. 몇몇 사람들은 그의 정치적인 공명을 의심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밀레는 손의 모양을 계속 바꿈으로서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렸을 뿐이었다. 십여년 뒤 밀레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서는 이 작품을 사기 위한 경매 전쟁이 계속되었으며 몇년 후, 프랑스 측에서 80만 프랑크를 제시하면서 비로소 끝나게 되었다." 명백한 작품의 가치에 비해 생존해 있는 밀레의 가족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이 불균형은 'droit de suite'를 고안해내게 된 계기가 되었다. ('Droit de suite'란, 한 작가의 작품을 되팔게 될 경우 그 수익의 일부를 화가나 화가의 가족에게 필수적으로 지급하는 정책이다.) 소치는 여인 아기를 돌보는 여인 실 잣는 여인 [1864] 양치기 소녀와 양떼 "1864년 살롱에 [송아지의 탄생]과 함께 출품하여 호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해가진 가을의 황혼에 양치는 소녀가 잔광을 등에 받으며 혼자 서 있죠. 그녀는 아직 양들에게 귀로의 신호를 하지 않고, 기도하는 듯 고개를 갸울이고, 저 멀리 있는 교회에서 저녁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양을 지키는 개의 실루엣이 효과적이죠.. 소녀가 약간의 오른쪽에 치우쳐 있는 점, 그 녀의 머리 부분과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의 선의 방향, 또한, 양떼나 경작지의 선이 지평선 위 중심에 집중되어 있는 일, 또한, 반대로 빛이 이 중심으로부터 구름을 뚫고 양들의 등을 건너 주위에 흩어지고 있는 일들이 장면에 원근법적인 거리감을 주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모델이 된 소녀의 얼굴은 밀레의 딸 루이즈를 그린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감자 심는 부부 낮잠 [1873] 봄 "1868년 알사스의 시업가인 프레데릭 알트만의 의뢰로 제작한 [四季]연작 가운데 한 점입니다. 1873년 상시에에게 보낸 편지에 "" 알트만씨에게 의뢰를 받은 [봄]은 거의 완성에 이르렀습니다""라고 썼으며 {여름]과 [가을]은 그로부터 1년 가까이 걸려 완성했으나 [겨울]은 습작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1867년의 만국박람회에서 수상하여, 그림의 의뢰도 그 수효가 늘어낫으나 건강이 쇠퇴하여 밀레는 그 주문에 응할 수가 없었지요. 여기에서는 농민의 작업이 주제를 이루고 있으며. 그 표현에는 노동에 관한 인류사적 감정이라고도 할 수가 있는 깊이와 넓이, 또는 체념과 평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상파적인 기법이 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자연주의 시험후기 및 배경지식 1. 자연주의 (自然主義 naturalism) 자연을 유일절대의 현실로 간주하는 입장으로 원래는 철학용어이다. 자연주의라는 용어는 1863년 카스타냐리가 미술에서, 1872년 졸라가 문학에서 처음 사용했다. 미술에서의 자연주의란 대상의 양식화와 표현의 관념화를 거부하고 관찰한 바 그대로를 충실하게 재현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대상으로 삼는 자연 그 자체가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자연의 재현 역시 가치가 있다. 이 경우 자연의 재현은 반드시 자연의 이상화를 뜻하지 않으며 선악미추는 중요하지 않다. 또한 서정적이고 청신한 전원 풍경을 주로 그렸던 자연주의는 현실에 대한 목적론적 설명을 거부하고, 현실을 선입견 없이 실험적으로 관찰하는 방법을 예술에 적용한다. 이것은 이상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으며, 낭만주의에 의해 조장된 개인적 감정의 득세에 의해 촉발되었다. 상상력에 의존했던 낭만주의에 반하여, 실재하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아름다움 전원과 농민의 생활을 화폭에 담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화파로, 근대 풍경화의 시초가 되었다. 미술에 있어서 이러한 경향은 17세기 이탈리아의 벨로리로, 카라바지오의 후계자인 만프레디, J. 리베라, 루 바란탄, 혼트홀스트 등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화가 쿠르베 등의 영향으로 나타난 사실주의의 새로운 경향을 지칭한다. 비평가 J.A. 카스타냐리는 1860년대부터 70년대 풍속화의 중요성에 주목하여 파스티안 르파주와 J. 베로로 대표되는 도시생활의 새로운 풍속과 정경을 그린 작품과 E. 마네에 의해 이루어진 파리의 환락가 묘사 등을 자연주의라 하였다. 2. 자연주의 화가 (1) 루소 Rousseau, Theodore 1812.4.15~1867.12.22 약력 : 프랑스 파리 출생으로 풍경화가이다. 양장점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소년시절부터 풍경화가인 백부와 네오클라식파 선배화가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기 위해 프랑스 전역을 편력하였다. 단순한 풍경을 그리려는 것이 아니라, 숨쉬는 자연의 생명을 표현하려고 시도하였다. 네덜란드의 풍경화가 로이스다르나 호이엔의 영향을 받았으며, 퐁텐블로의 숲과 루아르강 유역의 방데지방의 풍경에서는 결정적인 계시를 받아 “나는 수목들의 속삭임을 들었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거듭되는 그의 작품에 대한 살롱의 거부로 파리를 떠나 바르비종의 마을로 옮기고, 그곳에서 근대 외광파의 기초를 닦았다. 그의 작품은 후기인상파와 비교하면 훨씬 어둡고 네덜란드 풍경화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나, 그를 포함한 바르비종파의 자연에 대한 개방적 태도는 회화사상 빼놓을 수 없다. 대표작으로 《봄의 풍경》(1852?) 《숲의 태양》(65) 《퐁텐블로의 숲》(67) 등이 있다. (2) 밀레 Millet 1814.10.4~1875.1.20 약력 : 프랑스의 화가로 노르망디 지방 그레빌 출생이다. 1833∼36년 셰르부르에서 그림공부를 하다가 37년 장학금을 얻어 파리로 진출하여 P.들라로슈의 제자가 되었다. 루브르미술관에서 푸생, 르냉, 샤르댕 등의 영향을 받았으나, 도미에의 작품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48년 살롱에 출품한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루브르미술관 소장)은 그 후 농민생활을 그리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 49년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으로 이사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대지와 맺어져 있는 농민생활의 모습과 주변의 자연풍경을 그렸다. 이 시절에 T.루소, C.코로 등과 친교를 맺고, 빈곤과 싸우면서 진지한 태도로 농민생활에서 취재한 일련의 작품을 제작하여 독특한 시적 정감과 우수에 찬 분위기가 감도는 작풍을 확립, 바르비종파의 대표적 화가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바르비종파 화가들과는 달리 풍경보다는 오히려 농민생활을 더 많이 그렸다. 만년에는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아 화가로서의 영광을 누렸으며, 68년 프랑스의 최고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주요작품 중 《씨뿌리는 사람》(50) 《이삭줍기》(57) 《걸음마》(58) 《만종》(59) 등이 있다. (3) 컨스터블 Constable, John 1776.6.11~1837.3.31 약력 : 영국의 풍경화가이다. 제분업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왕였다. 1802년 아카데미전에 입선하였으나 곧 고향으로 돌아와 풍경화에 전념하였다. 화풍은 자연에 대한 관찰이 섬세하고, 영국 특유의 소박한 풍물을 묘사하였으며 밝은 색채감을 나타냈다. 특히 초록색의 발견자로서 근대 풍경화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 감각은 들라크루아를 비롯한 프랑스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으로 《건초 수레》 《솔즈버리대성당》 등이 있다. (4) 코로 Corot, Jean-Baptiste-Camille 1796.7.16~1875.2.22 약력 : 프랑스 파리 출생의 화가이다. 처음에는 상업에 종사하였으나 1822년부터 미샤롱과 베르탱에게 사사하여 그림을 공부하였다. 25년부터 2년간 동경하던 이탈리아에 유학, 자연과 고전작품을 스승으로 한 정확한 색가에 의한 섬세한 화풍을 발전시켜, 27년 《나르니다리》로서 살롱에 등장하였다. 그 후는 프랑스에 살면서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을 비롯한 여러 곳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뛰어난 풍경화를 남겼다. 《샤르트르 대성당》 《회상》 등이 유명하며, 풍경화 이외에도 《진주의 여인》《푸른 옷의 여인》《샤르모아 부인상》 등이 있다. 코로의 작품은 은회색의 부드러운 채조를 쓰면서 우아한 정경을 드높여 주어, 단순한 풍경에도 시와 음악을 부여할 수 있었다는 점이 큰 특색이다. 동시에 착실한 관찰자로서 자연을 감싸주는 대기와 광선의 효과에도 민감하여, 빛의 처리면에서 훗날 인상파화가의 선구자적 존재였다. (5) 터너 Turner, Joseph Mallord William 1775.4.23~1851.12.19 ① 약력 : 영국 런던 출생 화가이다. 14세 때부터 로열 아카데미에서 수채화를 배우고, 이듬해 아카데미 연차전에 수채화를 출품하였다. 그는 주로 수채화와 판화 제작으로 일생을 보냈는데, 20세 무렵에는 유화를 시작하여 풍경유채화를 전람회에 출품하기도 하였다. R.윌슨을 비롯하여 17세기 네덜란드의 풍경화가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국내 여행에서 익힌 각지의 풍경을 소재로 삼았다. 24세 때에 아카데미의 준회원이 되고, 3년 후 정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802년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풍경화의 소재를 모아 500점이나 되는 스케치를 남겼다. 한편, 이 무렵부터 N.푸생, C.롤랭의 고전주제적 풍경화에 끌려, 특히 구도를 잡는 방식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20년 전후부터는 그의 양식에 변화가 생겨, 자연주의적인 방향에서 벗어나 낭만적 경향으로 기울어졌다. 19년 T.로렌스의 권유에 따라 처음으로 이탈리아로 건너가 색채에 밝기와 빛을 더하게 되었다. 《전함 테메레르》(1838) 《수장》(43) 《비·증기·속력》(44) 《디에프항》 《노럼성과 일출》 등의 대표작은 그의 낭만주의적 완성을 보여준다. J.라스킨의 절찬을 받았으며 그가 죽은 후에도 주목받아, 프로이센-프랑스전쟁 중 망명해온 그 후의 인상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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