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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잭슨폴록
한마음   [누리집] 2008-02-03 05:15:20, 조회:2,011, 추천:27

잭슨 폴록의 생애

1912년 1월 28일 와이오밍주(州)에서 출생하였다.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공부하였다. 1930년대 무렵부터 표현주의를 거쳐 추상화로 전향하였으며, 구겐하임 부인과 비평가 그린버그의 후원을 받아 격렬한 필치를 거듭하는 추상화를 창출하였다. 1947년 마룻바닥에 편 화포(畵布)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독자적인 기법을 개발하여 하루아침에 명성을 떨쳤다. 그것은 떨어뜨린 도료(塗料)의 궤적(軌跡)을 거듭하여 화면의 밀도를 높여 감과 동시에 작가의 다이내믹한 제작행위를 직접 화포에 기록하는 것이었으므로 액션페인팅이라 불리게 되었다. 세계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작품에 《No.31》 《서부로 가는 길》 《남성과 여성》 《여름철》 등이 있다.


기타

'액션페인팅의 선구자'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1912~1956)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술계 중심이 옮겨지던 시기에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작가이다. 그는 붓으로 그리는 회화의 제작 방식을 탈피해 ‘액션페인팅'이라는 낯설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냈다.

1940년대 미술계는 기존의 미술운동이 낳은 회화기법들이 이미 다 소개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화지만 화가들의 변혁과 시도는 그치지 않았다.

잭슨 폴록은 이전의 화가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시도했다. 그는 캔버스를 벽에 세우는 대신 바닥에 눕혔다. 그리곤 페인트통과 붓을 들고 마음껏 캔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느끼는 내면의 움직임에 따라 폴록은 기쁨이나 슬픔, 놀람, 분노 등을 표현했다.

하지만 보는 이들은 그의 그림 앞에서 한참을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그림들은 모두가 확실성이 결여된 채 난잡한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관찰해야 할 것처럼 보여진다. 물론 이 같은 의문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잭슨 폴록의 추상 미술은 칸딘스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형태가 없다. 형태가 이미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작품이 미술사에서 자주 거론되고 중요시 되는 이유는 작품 제작의 방법적인 측면에 있다. 적어도 그는 보이지 않는 추상의 세계를 새로운 조형언어로 그려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뉴욕파라고도 불리는 추상표현주의는 40년대에 뉴욕에서 출발했는데 1950년대에 들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 운동은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을 빼놓고는 설명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위치는 중대하다. 폴록은 드립페인팅을 통해 주제의 중심에 서서 계획되고 정리된 작품이 아니라 거미줄같이 얽혀버린 심리적 미로를 표현했다.

회화 기법이 난무하던 20세기의 시대, 잭슨 폴록은 자신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화법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캔버스에 물감을 떨어 뜨리거나 들이 붓는 ‘드리핑 기법'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잭슨 폴록이 현대 미술의 대표주자로 주목받았던 이유는 단지 ‘드리핑 기법'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련되지 못한 리얼리즘과 나약한 파리파의 모디니즘을 해방시키며 ‘추상표현주의'를 이끌었던 그는 회화의 중심을 파리에서 미국으로 옮기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와이오밍 주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잭슨 폴록은 1930년 가을, 18살의 나이에 서부에서 뉴욕으로 왔다. 그 해 그는 미술학교에 입학하며 화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음주와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얼룩져 갔다. 만찬의 식탁을 뒤엎기 일쑤였고, 바에서 패싸움을 벌이는 일도 그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결국은 44세에 술취한 상태에서 교통사고로 요절한 화가로 남고 말았다.

멕시코 화가 시쿠에이로스의 작업실에서 있던 시절에 그는 물감을 섞거나 석고를 개서 바르는 등의 잡다한 심부름이나 일을 주로 했었다. 그래서 그의 동료들은 드로잉도 할 줄 모르는 무식한 화가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 와서, 폴록의 전성기는 곧 뉴욕의 전성기로 이해된다. 폴록 회고전이 열릴 때면 뉴욕은 50여 년 전의 활기를 되찾을 만큼 그가 이루어 놓은 혁명적인 변화는 위대한 것이었다.

폴록이 죽고 난 후 많은 화가들은 그의 회화 기법을 인용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그림 물감이 담긴 주머니를 총으로 쏘아 캔버스에 흘러내리게 하기도 했고, 에어브러시를 이용해 물감을 분사하거나 난도질을 하기도 했다.

뉴욕에서 토마스 하트 벤톤과 함께 그림 공부를 했던 폴록은 세잔과 피카소의 큐비즘적인 요소를 받아들이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칸딘스키의 추상적이고 표현적인 그림을 추종하기도 했다.

1940년에 들어서 그는 연속적인 구성의 대작을 많이 그렸다. 초벌칠도 하지 않은 캔버스 위에 그는 물감을 부어 깊이감을 이끌어내려 했다. 그의 색채가 전해 주는 느낌은 자유분방한 것들이었다. 거센 소용돌이처럼 공격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매우 낭만주의적인 평화로움과 즐거움을 암시하기도 한다.

“나는 그림 속에 있을 때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 한다. 내가 어떤 행위를 저질렀는가를 알게 되는 것은, 그림과 친숙해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경과한 뒤에야 가능해진다. 그림은 스스로의 생명력을 지니기 때문에 나는 그림을 고치거나 이미지를 부수는 일에 대해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나는 그런 식으로 그림이 완성되기를 허용해 줄 뿐이다. 나 자신과 그림의 접촉이 끊어지는 경우는 결과가 엉망진창으로 나타날 때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림과 나 사이에 서로 주고 받는 완벽한 조화 관계가 성립되며, 이 때 그 그림은 괜찮은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 작가의 작업일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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