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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독일의 르네상스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
한마음   [누리집] 2008-09-08 05:36:44, 조회:2,000, 추천:24
      독일의 르네상스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urer 1467-1528)의 초기 그림

      (Formative years, first Italian journey; paintings until 1496)


Portrait of Barbara Dürer 1490 Oil on pine panel,

47 x 38 cm Germanisches Nationalmuseum, Nuremberg

 


Portrait of Dürer's Father 1490

Oil on panel, 48 x 40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Alliance Coat of Arms of the Dürer and Holper Families 1490

Oil on panel, 47 x 39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Self-portrait at 22 1493
Oil on linen, transferred from vellum, 57 x 45 cm Musée du Louvre, Paris


Christ as the Man of Sorrows c. 1493
Oil on panel, 30 x 19 cm Staatliche Kunsthalle, Karslruhe


St Jerome in the Wilderness c. 1495
Oil on panel, 23 x 17 cm National Gallery, London


Virgin and Child before an Archway c. 1495
Oil on panel, 48 x 36 cm Magnani Collection, Mamiano near Parma


Portrait of Elector Frederick the Wise of Saxony 1496
Tempera on canvas, 76 x 57 cm Staaliche Museen, Berlin


The Dresden Altarpiece 1496
Oil on canvas, 117 x 96,5 cm (central panel), 114 x 45 cm (each wing)

Gemäldegalerie, Dresden


The Dresden Altarpiece (side wings) 1496
Oil on canvas, 114 x 45 cm (each) Gemäldegalerie, Dresden


The Dresden Altarpiece (central panel) 1496
Oil on canvas, 117 x 96,5 cm Gemäldegalerie, Dresden


The Seven Sorrows of the Virgin c. 1496
Oil on panel, 109 x 43 cm (central panel), 63 x 46 cm (each side panel)

Alte Pinakothek, Munchen and Gemäldegalerie, Dresden


The Seven Sorrows of the Virgin: Mother of Sorrows c. 1496
Oil on pine panel, 109,2 x 43,3 cm Alte Pinakothek, Munich


The Seven Sorrows of the Virgin: The Flight into Egypt c. 1496
Oil on pine panel, 63 x 45,5 cm Gemäldegalerie, Dresden

    
    독일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 판화가, 수많은 그의 
    작품에는 재단화와 종교화, 
    많은 초상화 와 자화상, 동판화 등이 있다. 
    
    <요한의 묵시록>연작(1498)과 같은 목판화는 그의 다른 작품들보다 
    고딕 미술에 대한 취향이 더 많이 나타난다.
    
    [초기 생애와 교육배경]
    
    헝가리를 떠나 1455년 뉘른베르크에 정착한 금세공인인 대알
    브레흐트 뒤러와 뉘른베르크 출신 
    바르바라 훌퍼 사이에서 2번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공방에서 
    제도공으로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1484년 13세 때 그린 뛰어난 자화상(빈 알베르티나 소장)과, 
    이미 후기 고딕 양식의 세련미를 보여주고 있는 
    1485년 의 <음악의 천사들과 성모>(독일 국립박물관)에서 이미 
    그의 성숙한 솜씨가 엿보인다.
    
     1486년 아버지의 주선으로 화가겸 목판 삽화가인 미카엘 
    볼제무트(1434-1519)의 도제로 들어가 
    볼제무트의 공방에서 3년 을 보낸 뒤 한동안 여행을 했다. 
    
    1490년 뒤러는 최초의 유명해진 작품인 아버지의 초상화를
     완성했는데, 이 작품에서 이미 그의 독특한 회화양식을 엿볼 
    수 있다.
    
    뒤러는 여행중에 네덜란드와 알자스, 스위스 바젤등을 방문한 
    듯하며, 바젤에서 그의 작품으로 확인된 최초의 목판화 <사자를 
    치료하고 있는 성 히에로니무스>(바젤 미술관 소장)를 제작했다. 
    
    1493-94년에는 잠깐 동안 스트라스부르에 있다가 책 삽화를 그리기
     위해 다시 바젤로 돌아갔다. 
    
    1493년 양피지에 그린 이 시기의 초기 걸작으로 엉겅퀴 1송이를 
    들고 있는 자화상(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이 있으며, 
    여러 작은 종교화들(독일 카를스루에 국립미술관에 그중 하나가 
    있음)도 이 시기의 것들이다.
    
    [첫번째 이탈리아 여행]
    
    1494년 5월말 뒤러는 뉘른베르크로 돌아가서 곧 상인의 딸 
    아그네스 프레이와 결혼했다. 
    
    뒤러는 1494년 가을에 처음으로 이탈리아로 여행가서 1495년
     봄까지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티롤 지방 남부의 알프 스 산맥을 주제로 대담하게 그린 많은 
    수채화들은 그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로 꼽힌다. 
    
    이탈리아 여행 은 뒤러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후 10년동안 제작한 소묘와 회화, 판화들의 대부분에는 
    이탈리아 미술에서 받은 영향이 직접, 간접적으로 나타나 있다. 
    
    베네치아에 있는 동안이거나 아니면 아마도 이탈 리아에 가기 
    전에도, 그는 이탈리아 중부 출신 대가들의 동판화를 본 듯하다. 
    
    이 미술가들중 피렌체 화 파의 안토니오 폴라이우올로가 젊은 
    뒤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세속적이고 악의적이며 종종 자기도취적인 이 시기의 그림들은 
    이탈리아 양식을 변형시킨 것이거나 
    새 로운 시대의 자유로운 정신이 숨쉬는 완전히 독자적인 창작품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는 폴라이우올로 의 <데이아니라의 강간>(코네티컷 뉴해이븐 
    예일대학 미술관 소장)에서 헤라클레스의 형상을 본떠 
    <헤 라클레스와 스탐팔수르의 새>(뉘른베르크 국립박물관 소장)
    를 그렸다. 
    
    르네상스 전통에 따라 그린 완전 히 신화적인 이 그림은 그의 
    작품중 이례적인 것이다. 
    
    1498년경에 그린 <드레스텐 제단화>의 가운데 페널은 이 그림과
     비슷한 양식으로 되어 있고, 
    만테나의 영향을 보여준다. 뒤러가 자유롭게 채택한 것의 대부분은 
    베네치아에서 알게 된 좀더 서정적인 화가 조반니 벨리니(1430-
    1516경)의 영향도 엿보인다. 
    
    뒤러가 르네상스 정신을 점차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작품은 1498년에 그린 자화상이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르네상스의 고귀한 이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을 묘사할 때 약간 자만에 차서 인생을 대하여 유행하는 
    의상을 차려입은 멋진 젊은이로 그리기를 좋아했다 
    틀에 박힌 중간색 단색 배경 대신에 그는 창문이 열려 
    오른쪽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는 실내를 묘사했다. 
    
    창 문을 통해 산과 먼바다의 조그마한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세부 묘사는 동시대의 베네치아파와 피렌체파의 회화
    작품들을 뚜렷하게 암시한다. 
    
    실내에 있는 자신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예술가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또 다른 세계인 멀리 보이는 광활한 풍경과 자신의 
    세계를 구별하고 있다.
    
    판화에서는 소묘와 회화에서보다 이탈리아 양식을 천천히 받아
    들였다. 
    1498년에 발표된 <요한의 묵시록 >연작들의 환상적인 목판화
    들에는 후기 고딕 양식의 요소들이 강하게 나타나며, 
    
    1498년경부터 나온 < 예수수난>연작의 초기 목판화들에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그래도 뒤러가 고전주의와 인문주의에 영 향을 받은 
    좀더 새로운 관념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근본적으로 이탈리아 양식을 추구하고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목판화<삼손과 데릴라>와 <카쿠스를 정복하는 헤라클레스>및 
    목판화 연작인 < 성모 마리아의 생애>(1500-10)에는 
    이탈리아 양식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하며, 상당수의 동판화 
    작품 들도 동일한 작품들도 동일한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그의 판화 작품들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양식은 1500년경까지 고딕 양식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 사이를 계속 오락가락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노력하다가 마침내 그의 명쾌한 방향을 찾아냈다. 
    
    1499 년에 오스볼트 크렘을 그린 감동적인 반신 초상화들과 
    뉘른베르크의 투헤어 귀족가문의 인물 3명을 그 린 초상화들
    (독일 바이마르 미술관, 카셀 국립미술관 소장) 및 1500년에 그린 
    <젊은 남자의 초상>(알테 피나코테크 소장)에는 확고한 양식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뒤러의 양식이 통합되는 이 시기에 그의 예술에서 이탈리아 미술 
    양식의 요소는 인체의 구조를 기하학 적으로 묘사하려고 한 
    베네치아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아코포 데 바르바리와 만나게 
    되면서 심화되었다.
    그의 영향을 받아 뒤러는 1500년경, 진정한 르네상스 양식에 따른 
    인체 비례의 문제에 골몰하기 시작한 듯 하다. 
    
    그의 노력이 가장 응축되어 나타난 최초의 작품은 <아담과 이브>
    (1504)라는 거대한 동판화였 는데, 여기에서 그는 인간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지적으로 계산된 이상적 형태로 나타내고자 했다. 
    
    모든 면에서 뒤러의 미술은 고전적인 경향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고전적 경향의 가장 중요한 그의 작품들 가운데 하나가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린 <세왕의 제단화>(1504)이다. 
    
    5개의 독립된 장면으로 이루어 진 이 작품은 이탈리아 양식의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뒤러의 지성과 상상력은 이탈리아 미술을 
    능가했다. 
    가운데 패널인 <동방 박사들의 경배>(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의 
    대담하고 자연스러우면서 부드 러운 구상과 <북치는 사람과 
    피리부는 사람>, 및 <욥과 그의 아내>(쾰른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 소 장)를 그린 양쪽 패널의 독창적이고 
    틀에 박히지 않은 사실주의는 이처럼 성숙한 양식에서 나온 것이다.
    
    [2번째 이탈리아여행]
    
    1505년 가을에 뒤러는 이탈리아로 2번째 여행을 가서 1507년 
    겨울까지 머물렀다. 
    그는 또 다시 베네치 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베네치아의 
    초기 르네상스 회화의 대표적인 거장이자 말년에는 전성기 
    르네상스 양식을 구사했던 조반니 벨리니의 작품에 크게 감동했다. 
    
    이 시기에 뒤러가 그린 남녀의 모습 에는 벨리니가 특히 즐겨 
    그린 아름답고 부드러운 초상화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뒤러가 그린 가 장 인상적인 작은 그림의 하나인 <동방
    박사들과 어린 예수>(1506) 벨리니가 만테냐의 <신전에 나타난 
    예수>를 자유롭게 각색한 작품을 생각나게 한다. 
    
    뒤러의 작품은 세세한 것들을 상세하고도 뛰어나게 묘 사한 
    대가의 역작이다. 
    
    이 그림의 전경에 있는 노인이 들고 있는 책의 한 면에는 
    '5일간의 일'이라는 글 이 씌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뒤러는 세부적인 소묘가 요구되는 이 힘든 작업을
     5일만에 해냈음이 틀림 없다. 
    
    이렇게 빨리 그린 것보다 예술성이 훨씬 더 뛰어난 작품은 온전히 
    벨리니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듯한 젊은 남녀의 반신 초상화들
    (1505-07)이다. 
    이러한 회화작품들에서는 부드럽고 생생한 표현 및 
    순수 한 예술적 기교와 주제의 유연성이 엿보이는데, 
    만약 뒤러가 벨리니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이러한 성과를 
    거의 얻지 못했을 것이다.
    
    1506년 베네치아에서 뒤러는 성 바르톨로메오 교회에 있는 
    독일인들의 장례 예배당에 걸 거대한 제단화 <장미 화환의 축제>
    를 완성한 후, 그해말에 볼로냐로 갔다. 
    
    8일내지 10일간으로 추정되는 이 짧은 여행 기간 중 그는 근처의
     에밀리아로마냐에서 베니치아파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미술 
    집단과 조우하는 기회를 가졌던 것 같다. 
    
    뒤러가 독일로 돌아가기 직전에 베네치아에서 그의 오랜 친구이자 
    인문주의자 인 빌리반트 피르크하이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1506.10)에서 자주 인용되는 다음과 같은 구정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이탈리아를 자신의 예술적, 인격적 고향으로 여기고 
    있었는가를 잘 알 수 있었다. 
    
    "오, 이제 태양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으니 얼마나 춥겠는가! 
    
    나는 여기에서 신사로 지내지만 고향에서는 한낱 식 객에 지나지 
    않을 것이네."
    
    [2번째 이탈리아 여행 후의 발전]
    
    늦어도 1507년 2월쯤 뒤러는 뉘른베르크로 돌아가 2년 뒤에는
     동물원 맞은 편에 집을 얻었다. 
    
    그는 대 체로 독창적인 그림을 그리면서도 이탈리아 여행에서 
    받은 예술적 인상때문에 계속 고전적인 원칙을 적용했다. 
    2번째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 그린 회화 작품들 중에는 
    <1만>(1508)와 <성 삼위일체에 대한 경배>(1511)가 있는데, 
    두 작품 모두 군중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이 시기의 소묘들 은 만테냐를 생각나게 하며, 엄격하고도 단순한 
    옷주름의 전반적인 선들을 통해 고전적 완벽성에 이르 려는 뒤러의 
    노력을 드러내 보여준다. 
    
    2폭 제단화 <아담과 이브>(1507,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과 소장) 
    는 이보다 더 단순하고 웅장한데, 여기에서 두 사람은 
    
    어둡고 황량한 배경을 등지고 고전적인 편안한 자세로 조용히 
    서 있다.
    1507-13년 뒤러는 동판화롤 <예수 수난>연작을 완성했으며, 
    1509-11년에는 목판화로 <예수 수난>을 제작했다. 
    이 두 작품들은 모두 광활함과 고요함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1513-14년에는 그의 가장 뛰어 난 동판화인 <기사와 죽음과 악마>,
    <서재에 있는 성 히에로니무스>,<멜랑콜리아>를 만들었는데, 
    이 세 점의 동판화는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각각 24.2-24.8cm와 
    19.1cm로 크기가 거의 같다. 
    
    이 동판화 작품 들에 관한 문헌들은 매우 풍부하고 복잡하며 때로
     견해가 상반되기도 하지만 이 작품들의 모호하고 암 시적인 
    세부 도상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동판화 작품들은 아마 
    함께 해석되도록 의도되었다고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뒤러가 이 3점의 뛰어난 동판화 작품들에 서 그의 예술적 
    재능을 한껏 발휘하려고 했으며, 그것을 성취했다는 것에는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세련된 형태 및 풍부한 구상과 분위기가 고전적으로 완벽한 전체 
    작품에 스며 있다. 
    자신의 어머 니를 그린 뒤러의 가장 표현이 풍부한 초상 소묘도
     이시기에 속한다.
    
    [막시밀리안 1세 밑에서의 활동]
    
    1512년 2월 4일부터 4월 21일까지 뉘른베르크에 있는 동안
     뒤러는 황제 막시밀리안 1세에게 고용되어, 
    1519년까지 주로 황제를 위하여 작업을 계속했다. 
    
    그는 당대 가장 뛰어난 독일 미술가 몇명과 공동으로 황제의 
    기도서 가장자리에 소묘를 그려넣었다. 
    그는 또한 철판을 사용해 많은 애칭들을 완성했는데 (1515-18), 
    이 작품들은 그의 숙달된 애칭 솜씨와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한편 막시밀리안 황제를 칭 송하는 기념비적 목판화들이다. 
    
    약간 방대하고 장식이 요란스러운 이 목판화 작품들에서 뒤러는 
    자신에 게는 낯설지만 고객의 성향에 따라 자신의 창조적 상상력을 
    억지로 꿰어 맞출 수밖에 없었다.
    
    <푸크레티아>(1508,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소장)와 
    막시딜리안 1세의 초상화 2점(1519, 독일국립박물관,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등 공식적으로 서보인 많은 작품들 외에도 
    이 10년동안 뒤러는 더욱 매력적인 그 림들을 비공식으로 더 
    많이 제작했다. 
    
    그는 다시 여행을 떠나 1517년 가을에는 발베르크에 머물렀으며 
    1518년 여름에는 아우크스부르크에 가서, 그 전해에 교황의 
    면죄부 판매를 고발한 95개항의 규탄서를 비 텐베르크 성의 
    교회 문에 붙인 마르틴 루터를 만났다. 
    
    뒤러는 그 뒤 루터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이 듬해 5월이나 6월에는 피르크하아머와 함께 스위스에서 
    잠시 지냈다. 
    
    뒤러는 1515년경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전성기 르네상스의 뛰어난 화가 라파엘로와 서로 작품을 
    주고받았다. 
    
    [네덜란드로의 마지막 여행]
    
    1520년 7월, 뒤러는 아내와 함께 네덜란드를 두루 여행하기 
    시작했다. 
    10월 23일 아헨에서 막시밀리안 1 세(1519.1.12죽음)의 뒤를 
    이은 황제 카를 5세의 즉위식에 참석하여 당대 독일 미술계에서 
    자신에 버금 가는 신비하고 극적인 화가인 마티아스 그뤼네발트를 
    만나 그에게 여러 점의 동판화 작품을 선물했다. 
    네이멘헨과 쾰른을 거쳐 안트웨르펜으로 되돌아와서 1521년 
    여름까지 거기서 머물며 네덜란드의 대표적 인 화가들과 사귀었다. 
    
    1520년 12월 셀란트에 들렸다가 1521년 4월에 브뤼주와겐트를
     여행하여 거기에 서 미켈란젤로의 <성모 마리아>뿐만 아니라
    15세기 플랑드르의 대가인 얀반 에이크와 후베르트 반 에이 크
    , 로히에 반 데르 웨이댄, 휘고 반 데르 구스 등의 작품을 
    보았다. 
    
    뒤러가 네덜란드를 여행하면서 그 린 스케치북에는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인 소묘들이 많다. 
    여행기간이나 그 비슷한 시기에 그린 몇 점의 그림들의 예를 
    들면, <안나 셀브드리트의 초상>과 <성 히에로니무스의 반신
     초상화>(1521,리스본 국립 박물관 소장),  예전에는 <베른하르트
     반 오를레이라고 하던 베른하르트폰 레스텐의 작은 초상화>등은 
    분위기가 네덜란드파와 비슷해 보인다.
    
    [마지막 작품들]
    
    1521년 7월쯤 뒤러부부는 뉘른베르크로 돌아왔지만, 
    뒤러의 건강은 이미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몇몇 유명인사의 초상화를 그렸고 중요한 인물들의
     초상을 동판화와 목판화로 여러점 제작했으나, 이론 적, 과학적 
    저술과 삽화 그리기에 여생을 바쳤다. 
    그의 가장 뛰어난 회화작품 중 하나인 네사도(성 요한, 성 베드로, 
    성 바울로, 성 마르코)는 1526년에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뒤러는 화가로서 최고 절정 의 수준에 도달했다. 
    그는 자신의 솜씨에 언제나 만족했으나 이로 말미암아 단순
    하면서도 표현이 매우 풍부한 폭넓은 그림을 그리려는 이상이
     위축되지도 않았다. 
    뒤러는 1528년에 죽어 뉘른베르크에 있는 성 요한 교회의 묘지에 
    묻혔다. 
    그가 독일의 가장 영향력있는 미술가 중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그를 따르는 수많은 제자들과 모방자들로도 명백하게 증명된다. 
    
    네 덜란드와 이탈리아의 미술가들조차 뒤러의 판화 작품들을 
    자주 모사했다. 
    뒤러가 국제적으로 얼마나 유 명했는가는 피렌체의 미술가인 
    조르조 바사리가 쓴 <이탈리아의 뛰어난 건축가, 화가, 조각가
    들의 생애 >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책에서 바사리는 알브레흐트 뒤러를 '진실로 위대한 화가이자
     가장 아름다운 동판화의 창작자'라고 묘사하면서 그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유명한 이탈리아 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뒤러도 아마 스스로를 '미술의 제1인자'라고 여긴 듯하며, 
    그의 자화상들은 명백 히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확신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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